신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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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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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서양의 근대식 인쇄술이 도입되고 새활자가 만들어지는 시기는 대략 고종 원년(1864년)부터입니다. 최초의 근대식 납활자는 1880년 최지혁(崔智赫)의 글자를 바탕으로 프랑스인 천주교 주교 리델(Riedel)이 주도하여 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처음 주조되었습니다. 이 최지혁체는 작은 5호 활자이나 곧이어 다듬어져 3호, 2호 활자가 도쿄의 스키지(築地)활판소에서 주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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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에는 최초의 근대식 인쇄소인 박문국(博文局)이 신설되었고 여기에서 한성순보(漢城旬報)가 그해 10월 31일에 순 한자로 발간되었습니다. 이 때 사용된 활자가 최초의 근대식 신문용 납활자였습니다. 이 활자는 일본의 스키지(築地)활판소에서 수입된 한자 활자로 크기는 현재의 활자 단위로는 약 10포인트 정도였으며, 당시의 활자 단위를 따서 ‘4호 활자(한성체)’로 불렀습니다.
이후 한글4호 활자(한성체)가 갖추어졌고 한글과 한자 혼용의 한성주보(漢城週報)가 1886년 1월 1일자로 발간되었습니다. 이 때 수입된 한글 활자도 일본의 스키지(築地)활판소에서 만들어졌지만 설계자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후 박문국은 1888년에 폐지되었지만, 1885년에 미국인 선교사 아펜잴러(H. Appenzeller)가 배제학당을 설립했습니다. 이듬해 1886년에는 학교 안에 활판인쇄소를 개설해 개신교 출판물을 인쇄하기 시작했습니다.
1892년 무렵에는 영자와 한글 활자를 직접 주조해서 사용할 만큼 큰 규모를 갖추었는데, 1896년 4월 7일 드디어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이 간행 되었습니다. 이 때 사용한 활자가 ‘한성체’라는 활자의 한글 납활자인데 박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보이며, 한성체 이후 5호, 6호 활자가 새로이 주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으로 한글 활자체의 개발이 침체되었습니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조선 통치방침의 전환으로 한국인에게도 제한적이나마 일간지의 발행이 허용되었습니다. 1920년 3월 5일 조선일보, 4월 1일 동아일보와 시사신문 등 세 민간지가 창간되었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도 발행되어 4개의 한국어 일간지가 발행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신문에는 8~9포인트 크기의 활자가 사용되었는데 초기에는 인쇄시설을 갖추지 못해 매일신문의 활자나 일본인 소유의 인쇄소 활자를 이용해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1922년 11월 18일에는 조선일보가 7.5포인트 크기의 새한글개발 활자를 발표했는데 이 활자가 국내에서 최초로 신문 전용으로 개발된 한글 활자입니다. 이 활자는 궁서체와 매우 흡사한 조형을 가졌고, 궁서체의 대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모부인의 글씨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당시의 조선일보 사고(社告)는 밝히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1933년 4월 1일부터 국내 신문 최초로 공모를 통해 완성한 새활자를 선보였습니다. 이원모(李原模)의 작품인 이 활자는 한자 명조체와 조형이 잘 어울리는 특징을 가진 한글 명조체라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이 활자는 일본의 이와다(岩田)자모회사의 바바(馬場)라는 사람이 손으로 조각하여 만들었고, 해방 후 6.25 직전까지 동아일보의 본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후에도 세 차례에 걸쳐 본문활자를 개량하였습니다. 1938년 4월 1일자 조선일보에는 활자 조각가 박경서의 작품인 ‘박경서체’가 등장하는데, 10.5포인트 크기의 이 활자는 해방 이후에도 각종 활자매체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가장 완성도 높은 활자체로 오늘날 명조체(바탕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0년 조선과 동아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되고 활자의 개발은 물론 신문이 발간되지 못하는 암흑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해방 후 1991년까지는 산업혁명과 고도 경제 성장 등 큰 변화와 함께 한국 신문이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일본으로부터 자모조각기(字母彫刻機)와 사진식자기(寫眞植字機)가 도입되고 새로운 활자 원도로 새활자를 만들면서 증면과 품질 경쟁 등 신문 산업도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신문을 읽는 시간이 늘어나고 읽기 편한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요구는 새로운 인쇄기인 오프셋 윤전기의 도입과 흑백에서 컬러 지면으로의 전환 등 제작방식의 혁명적인 변화와 함께 활자의 발전을 가속화했습니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일반 활자는 1955년 동아 출판사의 김상문(金相文)의 의뢰로 불세출의 활자설계자인 최정호(崔正浩 1916~1988)가 원도를 설계하고,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벤턴 자모조각기로 제작한 ‘초기 동아출판사활자’는 미려함으로 인쇄 출판계를 석권하였습니다. 1960년 조선일보 조정수는 가로가 세로보다 넓은 납작한 비례의 편평체(扁平體) 활자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고, 1962년 한국일보가 최정순에게, 1965년에는 중앙일보를 창간하면서 최정순의 활자체를 활자로 개발하는 등 활자개발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1980년부터 1991년까지 조선일보의 이남흥은 세 차례에 걸쳐 개발과 수정을 반복하며 새 활자를 완성했습니다. 이 시기의 신문 본문용 활자는 도서출판용 활자와 달리 작으면서도 크게 보이도록 하고, 세로짜기에 적합하게 납작한 비례로 발전되었습니다. 신문사마다 본문용 활자를 크게 확대시켜 가독성을 높이려고 애쓰는 등 경쟁이 본격화 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신문들이 하나둘씩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로 제작방식을 바꾸면서 납활자는 사라지고 디지털 활자가 등장했습니다. 이 시기는 신문의 지면 편집 경쟁이 치열해지고, 세로짜기에서 가로짜기로 조판 방향이 바뀌고, 지면이 확대, 컬러화, 시각화와 전국 동시인쇄, 동시배달 등 본격적인 경쟁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CTS초기에는 비트맵 폰트(Bitmap Font)로 개발이 되었고 차츰 윤곽선 폰트(Outline Font)로 바뀌어가게 됩니다. 가로짜기가 본격화되면서는 세로짜기 신문의 활자와는 달리 가로가 좁고 세로가 긴 길쭉한 비례의 장체(長體) 활자가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일보는 1999년 신문 가운데 가장 늦게 가로짜기로 바꾸면서 신문 최초로 전용 장체 서체를 개발·완성했는데 산돌글자은행과 조의환, 김영균이 참여했습니다.
이후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가로짜기 전용 서체를 각각 전문 서체 개발사인 ‘산돌글자은행’과 ‘윤디자인’에 의뢰해 개발하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문사가 직접 개발인력과 시설을 갖추고 활자를 개발했다면 1990년대 이후는 조선일보를 제외한 모든 신문사는 자체 개발을 포기하고 전문 서체 개발 회사에 개발을 의뢰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납활자가 사용되던 시기의 신문사의 재산목록 1,2호는 인쇄기와 활자였습니다. 활자는 그만큼 소중하게 다루어졌고 활자가 없으면 신문을 낼 수 없었고 좋은 활자는 곧 좋은 질의 지면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앞다퉈 좋은 활자를 확보하기 위해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했습니다.
지금은 신문사 어디에도 활자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모두 컴퓨터 속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접도 옛날 활자에 비하면 어림도 없습니다. 조판용 컴퓨터 속에는 원하는 활자가 모두 들어있고 원하는 크기로 마음대로 불러다 쓸 수 있습니다. 문선공도 정판공도 없이 조판자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그야말로 데스크탑 퍼블리싱(Desk Top Publishing)입니다. 책상에서 모든 책과 신문, 잡지를 다 만들 수 있습니다.
납활자 시대보다 고품질 활자들의 종류도 많아 어떤 활자를 써야 할지 고민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편하게 쓰다보니 활자에 대한 애정은 제대로 된 활자가 없던 시절보다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저 전원만 켜고 키보드만 두드리면 활자가 튀어나오니 소중할 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컴퓨터만 구입해도 수두룩 하니 활자가 공짜로 딸려오는 매우 풍요로운 활자 환경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한글 활자는 변변한 본문용 활자가 부족합니다. 표제용 활자는 매년 많게는 십 여 종 이상 개발되지만 본문용 활자는 개발의 어려움 때문인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활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문을 보면 새로운 관찰거리가 또 한 가지 생깁니다. 활자매체의 위기라고는 하지만 사실 어떤 매체도 활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매체 환경으로 접어든 이 시점에서 TV, 인터넷 신문용 활자나 전자책, 모바일용 활자 등 활자의 새로운 진화와 발전은 계속 요구되고 있습니다.
<조의환 한국시각디자인정보협회 감사> |